금요일, 4월 16, 2021

얘기하기도 지겨운 한국에서의 프리츠커 수상에 대한 기대

지난 14일 2016년 프리츠커상이 발표되었다.

수상자는 ‘알레한드로 아레바나’로, 그는 최근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의 총감독에 선정되기도 했다. 프리츠커상을 주관하는 프리츠커 재단은 지난 몇 년간 건축가들에게 건축적인 의미로서 건축가의 역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보여진다. 2014년 수상자 시게루 반은 난민을 위한 종이 튜브 구조 거주시설과, 파손된 성당을 대신한 종이 성당 등 건축을 통한 재난 피해 복구 활동이 선정 이유로 알려졌고, 2015년 프레이 오토는 작고 전 수상소감에서 ‘나의 건축은 자연재앙이나 참사의 현장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타입의 빌딩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고 밝힌 바 있다. 2016년 올해 수상자 아레바나 역시 사회 참여적 건축운동과 주택 문제 해결 및 모두를 위하는 도시환경 건설에 오랜 시간 노력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실용적 건축을 추구했는데, 대표작인 ‘엘리멘탈’은 빈민을 위한 공동주택 프로젝트로, 건물을 온전하게 완성시키지 않은 채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는 저소득층들의 소득이 늘어날 경우, 쉽게 증축하거나 개조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두는 독특한 설계를 고안했다.

이들의 수상은 국내 건축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건축가들이 프리츠커를 위해 건축할 필요는 없고, 프리츠커가 모든 건축의 본질은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국가에서 건축은 그 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 만큼, 건축, 문화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건축문화를 부흥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여러 곳에서의 엇박자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최근 논란이 있었던 건축법 25조 개정안 등은 건축계가 가진 현 시대 하나의 시대적 촌극이기도 하다.

매년 프리츠커 수상 행사 때마다 거론되는, 국내 건축계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몇몇 건축가의 경우, 사회 참여적 역할보다는 자신이 가진 예술적 재능을 뽐내거나 전시 등 행사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짙다. 이것은 최근 주목 받는 젊은 건축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그들의 활동은 그들이 건축을 풀어나가는 방식일 수도 있고, 생존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도 있다. 사회적 요구에 건축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을 사회적 요구에 등한시하게 만든 문화 전반의 책임도 있을 수 있다. 앞으로도 몇 년간은 국내에서 프리츠커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박지일 수석기자(press@masilw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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