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월 18, 2021

[Interview] 건축잡다_빛의 순간을 포착한 디자이너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박은지_StudioEJ StudioEJ 대표

스튜디오이제이(StudioEJ) 박은지 디자이너다. 스튜디오이제이는 2012년부터 인테리어와 가구 및 조명을 다루고 있는 스튜디오다. 최근에는 가죽제품도 작업하고 있다. 스튜디오이제이의 이름은 이니셜(EJ PAK)에서 따왔다. 대학교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하다가 실내건축으로 대학원을 갔다고 들었다. 대학교에서 배운 가구디자인은 아트 퍼니처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가구디자인이 재밌었지만 어떤 갈증 같은 게 있었다. 가구 자체가 아트피스(Artpiece)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간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가구)의 내용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 끝에 미국에서 실내건축을 공부하게 됐다. 실내건축은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에 집중된 학문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대학원에서 배운 것은 달랐다. 기존의 컨텍스트에서 이 구조가 어떻게 변경되는지 탐구하고,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공부였다.


스튜디오 오픈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미국에서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다가 한국에 들어온 뒤 시공사도 짧게 다녔다.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주거 문화의 중심이다. 이렇다 보니 내가 다니던 회사도 아파트 업무에 치중되어 있었다. 업무의 종류나 프로젝트의 다양성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에 집중해야 한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흘려보낸 기분을 느꼈다. 흥미를 가지게 된 재료, 생각들을 발전시키거나 공부해보지 못하고 지나쳐야 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흘러가는 대로 자유롭게 작업하고 싶었다. 당시 나에겐 충분히 고민하고 적용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이 중요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는 이런 환경을 가지기 힘들었다.

스튜디오 오픈 계기는 사실 드라마틱하지 않다. 2013년에 친구가 전시를 준비한다고 했다. 준비하고 싶던 프로젝트를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작업실을 공유하면서 StudioEJ를 시작하게 되었다.

Tab Bookcase(2013)

스튜디오이제이의 대표 작업물은 프린티드 라이트(Printed Light)라고 생각한다. 매년 조금씩 변화되는 작업의 과정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 작업을 자세히 소개해 달라.

프린티드 라이트는 2015년부터 진행된 프로젝트다. 조명을 만드려고 작업하던 중에 빛의 본질에 대해 탐구했던 적이 있다. 빛은 그 공간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면에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소재라 생각한다. 그중 자연의 빛이 가진 힘은 매우 크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빛이 주는 따뜻함과 포근한 느낌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자작나무 합판에 숲에서 얻을 수 있는 빛의 그림자를 프린트하여 작업했다.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이용하여 빛을 드러내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디자인페어에서 그림자로 표현한 빛을 보고 광원을 찾는 사람들을 모습은 봤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2016년에는 빛 작업에 움직임을 주고 싶었다. 기존에 작업했던 오브제들에서는 빛이 정지된 느낌이라 아쉬운 점이 있었다. 숲에서 부는 바람에 따라 그림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렌티큘러는 여러 이미지를 겹쳐서 작업하여 보는 시각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 소재를 통해 프린티드 라이트에 살아있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처음 적용하는 소재라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꽤 성공적인 시작이기도 하다. 프린티드 라이트는 앞으로도 다양한 스케일로 꾸준히 작업할 예정이다.

Printed Light(2015)

와이어 프레임으로 제작된 레이어드 테이블(Layered Table)의 간결한 다자인도 눈에 띈다.

재료를 고민하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 겹쳐지는 테이블을 제작할 기회가 생겼다. 기존의 네스팅 테이블을 관찰하다가 겹쳐진 구조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와이어프레임을 테이블에 적용해봤다. 네스팅테이블은 크기가 점차적으로 축소되는 똑같은 모양의 테이블이 포개져 있는데, 필요에 따라 확장하여 사용할 수 있다. 오랫동안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제작이 될 정도로 매력있는 아이템이다. 약간의 변화로 이 테이블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해서 드러내는 작업이라고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바닥면이 지그재그 모양인 플레이트다. 와이어 프레임으로 이뤄져 있다 보니 작은 소품을 올려놓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플레이트로 와이어 구조의 한계를 매력적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Layered Table(2015)

실내건축 일과 디자인 제품 제작하는 일의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내건축을 전공한 것이 현재의 스튜디오를 차리고 나서 하는 일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스케일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 하지만, 현 상태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은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본질에 대한 질문들과 스스로 답을 찾아가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적용 및 수정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과물이 만들어지는데, 가구, 조명, 가방 등 제품을 디자인할 때에도 거의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학부에서 가구디자인을 공부했었는데, 실내건축을 공부한 후에 가구를 접하게 되니 그 전에 가구를 디자인할 때와는 다르게 재료, 구조, 가능성에 대한 스펙트럼이 조금 더 넓어졌다.

Printed Light(2018)

스튜디오이제이를 운영할 때 또는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겪었던,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나.

매년 작업을 진행할 때 새로운 재료와 구조를 공부한다. 그래서 매번 초보 같고, 매번 어렵고, 매번 처음 하는 작업처럼 미숙하고 초조한 감정을 가지기도 한다. 심적으로 힘든 일을 접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지속해서 작업하게 되는 것은 접하는 문제들을 클라이언트나 제작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하나하나 시도해 보면서 적합한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에서 보람을 느낀다. 퍼즐을 맞추는 기분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은 많다. 힘든 시간이 전공과 다른 일을 선택해서 겪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일이든 어느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을 가지지 않나. 오히려 전공과 다른 다양한 일을 하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어서 좋은 점도 많다.

현재 준비 중인 새로운 작업이나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는가.

내년 1월 KCDF의 갤러리에서 렌티큘러를 주제로 여러 디자이너들과 함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현재는 전시를 목표로 프린티드 라이트 프로젝트의 연작을 준비 중이다. 이 외에는 렌티큘러라는 재료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하여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하는 것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빛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있기도 하다.

Printed Light(2017)

마지막으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혹은 다양한 형태로 건축을 하는 건축인들에게 한마디 전해달라.

건축 공부를 하면, 건축가가 되어야 하는 강박을 가질 수 있다. 제품을 디자인하면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 나도 이런 강박을 가진 적이 있다. 이런 강박들을 버리면 어떨까. 창조적인 작업들은 행위로 이뤄진다. 그리고 이것은 타이틀 혹은 소속과 상관없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내건축을 공부하면서 창조하는 일이 즐겁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더 넓은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 조사하고, 배우고, 만들어내고, 실패도 하고, 또다시 만들면서 결과물까지 오는 과정들을 내가 즐거워한다고 깨달았다. 나에게 창조적이고 작업의 에센스는 이러한 것이다.

건축은 그 자체로 이미 매력적이다. 단순히 집을 짓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 관해서 공부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공간이 어떻게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해보기도 하며, 공간을 어떤 방법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까 고민해볼 수도 있다. 이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도 배워야 한다. 공간을 아트 프로젝트로도 만들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탄탄하게 배워 두는 것은 언제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디자인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전한 길은 없다. 계속 도전해야 하고,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줄도 알아야 한다. 시련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반복하면서 더 단단해지길 바란다.

  • 홈페이지 www.studio-ej.com
  • 인스타그램 @ejpak @sunnysidebag
  • 이메일 studioejpak@gmail.com


인터뷰 진행: 고현경 기자 / 자료제공: StudioEJ

::이 인터뷰는 월간 건축문화 2019년 10월호(461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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