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0월 29, 2020

[Interview] 건축잡다_김정현, 건축으로부터 무대

 

건축으로부터 무대 _ 김정현, 공연무대기획자

김정현_공연무대예술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건축설계 전공을 했지만, 일본 극단에서 무대일을 시작해 7년간 무대감독파트의 무대팀 소속으로 일하며 사내 디자인팀으로서도 활동했다. 극단에서 나온 후에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일본 행 한국공연이나 내한한 일본공연의 스태프로 참여하거나 통역을 겸하기도 한다.

 

건축을 전공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다.
사촌언니가 건축전공 중이긴 했지만, 나는 건축에 대해 잘 몰랐다. 그저 확실한 기억은 강한 호기심 하나로 당시 모든 입학원서에 건축학과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이유가 시작이었지만 궁금했던 건축에 대해 알게 될수록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건축이라는 학문을 접했던 경험은 내게 소중하다.

 

건축이 아닌 다른 분야로 취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나 사건이 있었나?
취미 하나가 ‘씨앗’이 되었고, 이상한 열망 하나가 ‘사건’이 되었던 것 같다. 대학에 다닐 때, 소극적 공연관람을 취미로 갖게 되었다. 많은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관람을 거듭할 때마다 내가 조금씩 달라짐을 느꼈고 즐겼다. 처음에는 작품 자체만 즐기다가 자연스럽게 시야가 넓어져 공연무대에도 집중하기 시작했고, 무대디자인에도 눈을 두었다. 졸업한 후에는 관심을 구체화하고 싶어서 관련 책을 읽고 무대디자이너로 일하는 동기에게 실무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새로운 선택을 시도해볼 만큼의 분명한 그것은 아직 당시에는 없었다. 졸업 후, 전시디자인회사와 건축디자인사무실을 경험한 후 일본으로 갔다.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때문이었다. 결국 일본으로 간 후에 결심이 분명해졌고, 움직였고, 무대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극단사계에 입단하기 위해 준비했던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일본어는 졸업작품을 마치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을 때 배워 두었다. 그저 취미를 위한 스킬일 뿐이었는데, 일본에 도착한 후에는 당장 제일 강한 무기로 키워야 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덕분에 몇 개월 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현지 일본어를 배우며 적응했고, 틈틈이 일본의 공연무대도 보았다. 정보를 얻고 공부하며 조용히 생각과 마음을 다듬으며 결심을 확인한 후, 극단 ‘사계’에 입단원서를 제출했고, 합격 후에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면접에 임했다. 건축디자인 포트폴리오라도 보고싶다던 면접관(무대기술부 총감독)의 요청에 최선의 정성으로 단시간에 만들어 보여드렸고 40여 분간 많은 질문을 받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면접관은 그렇게 나의 언어능력을 검증하고 열정을 확인했다. 일을 함에 있어 ‘언어’는 스킬이 아닌 기본일 뿐이고, 무대일을 지속함에 있어 ‘열정’은 필수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합격했고, 그렇게 극단사계에 입단했다.

 

건축을 공부한 것이 현재의 업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무대일을 처음 하는데도 시작이 너무 생소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건축을 배운 덕분이었다. 극단 내 디자인 공모에 참여하여 무대디자인을 구상할 때도, 디자이너가 만든 도면으로 무대를 만들 때도, 열악한 공연장에 무대를 세워야 할 때도, 공연진행을 위해 무대 위에 대도구를 배치할 때도, 공연자료를 남기기위해 기록을 남길 때도, 캐드로 그려진 도면을 이해하고 연구하고 수정할 줄 알아야 했다. 건축디자인의 사고과정은 무대디자인의 그것과도 흡사하고 무대감독의 역할과도 맥이 같았다. 무대일을 배우고 알게 될수록 건축을 배워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우연습실 바닥에 일필(一筆)로 ‘거대한 원 그리기’에 성공한 사람이 나뿐이었을 때도, 왠지 뿌듯했다.

 

공연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내리는 과정에 대해 대략 설명하면?
기존작품이나 창작품 중에서 공연할 작품이 정해지면, 연출가의 큰 방향 아래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작품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디자인을 한다. 여러 번의 회의로 각 디자인들의 방향이 정해짐과 동시에, 캐스팅된 배우들은 연습실에서 연출가의 지도 하에 배역을 완성한다. 크게 둘로 구분하자면, 공연의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관장하는 기술 스태프들의 작업과 소프트웨어인 배우들의 연기가 동시에 연출가의 작품의도 아래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시코미(Set Up, 무대설치)가 시작되면 기술 스태프들이 구상한 디자인들이 드디어 극장에 구현되고, 테크니컬 리허설이 끝나면 연습을 마친 배우들이 공연장에 합류한다. 기술팀과 배우들이 무대감독과 연출가의 지휘를 통해 합을 맞추고 수정하며 공연무대를 완성해 나간다. 모든 준비가 완성되면, 최종 리허설(프리뷰)을 하고 객석을 오픈하여 관객을 만난다. 공연기간 동안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마지막 공연의 끝을 알리는 메인 막이 내려옴과 동시에, 일사천리로 바라시(Strike, 무대철거)가 시작된다. 시코미 때보다 시간여유가 없기에 서로의 안전에 더욱 신경을 쓰며 철거해 나간다. 대부분의 세트가 재공연에 활용되거나 재활용되므로 도구들도 최대한 안전하게 바라시한다. 공연규모에 따라 준비기간은 몇 달에서 단 며칠까지 크게 다르지만, 철거는 그보다 단적으로 짧은 기간에 이뤄진다. 그 와중에 공연 스태프에게 무심한 공연장(물리적 환경 열악)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공연무대의 준비와 마무리과정의 핵심은 확보된 기간 안에 확실하게 사전 협의된 스케줄(시간, 작업)에 맞게 만드는 일이다. 여러 분야 사람들의 협업이 전부이므로 약속한 시간 안에 그 일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디자인을 실현시켜주는 무대기술이 발전하면서 표현의 한계는 사라져가고 있고, 요즘처럼 큰 규모의 공연들에는 과감하고 복잡한 기계장치들이 사용되므로, 안전을 확보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무대감독이, 연습을 마친 배우들이 무대에 첫발을 들이기 전에 하는 일이 무대장치의 시연과 안전교육이다.

 

일을 하며 겪은 어려움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요코하마의 뮤지컬 캣츠전용극장(가설)에서 공연 중에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다행히 인터미션 중이라 배우도 관객도 대피에는 문제가 없었다. 계속되는 여진 때문에 공연을 재개할 수는 없었지만 언제든 공연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조심스레 복구작업에 임했다. 철골구조 천장 공중에 설치한 철제 가설 다리가 가득한 스노코(극장 그리드에 해당)에서 장치들의 파손여부를 확인하던 중 여진이 올때마다 제일 가까운 H빔 기둥에 매달렸다. 기둥으로 달려가던 그 짧은 순간에도 ‘구조역학 공부를 잘했으면 이 순간 더 튼튼한 기둥을 고를 수 있을텐데’라며 자학했다. 지진은 여러모로 무서웠고, 건축은 여러모로 유용한 학문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일본 전국투어 공연 중에, 대학 때 건축잡지에서 인상깊게 봤던 공연장에서 직접 공연을 하게 되어 신나게 여기저기 구경하며 기웃거렸던 즐거운 기억도 있다.

 

건축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이 없는지 궁금하다.
직업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건축을 안하고 있다고 생각 하지는 않는다. 다른 형태이긴 하나 무대 위에서 건축을 문학처럼 접하고는 있다. 법규를 무시하는 건축, 시공간을 초월하는 건축, 차원을 초월하는 건축 등등. 그래서 불쑥 아쉬운 마음이 생겨도 어느정도 달랠 수 있고, 달래고 있다. 또한, 다른 분야에 있으면서 건축이 얼마나 많은 곳에 학문으로 녹아 있는지 오히려 깨닫고 있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건축이라는 학문에서 많은 도움을 얻어 현재 선택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혹은 다양한 형태로 건축을 하는 건축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건축을 직업으로 선택하든 아니든 자신의 선택에 어느정도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의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 ‘현실은 다르다’는 말은 지금의 나를 변화시킬 긍정일 수도 있다. 새롭게 다가온 현실에 너무 쉽게 상처받고 포기하지는 않을 수 있을 만한 마음가짐으로, 자신이 선택한 직업을 충분히 들여다봐 주는 것도 자신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비극 속에서 굳이 희극을 찾아낼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 반대보다 나를 위한 시야는 넓지 않을까? 나도 시행착오가 많지만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질문에 답이 있는 것처럼, 건축인은 어디에서건 다양한 형태로 건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을 접한 이상, 정도를 걷지 않는다고 하여 건축과 멀어지기도 은근히 힘들지 싶다. 어떤 선택을 한 누구든 모두들 힘내서 원하는 바를 이루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이 인터뷰는 월간 건축문화 2019년 1월호(452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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