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0월 29, 2020

[Interview] 건축잡다_이원재, 건축에서 북디자인으로

건축에서 북디자인으로 _ 이원재, 북디자이너

이원재_북디자이너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건축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공동주택 및 단지계획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이후 설계사무소에서 3년간 실무를 하다 그만두고 출판사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북디자인이라는 일을 시작했다. 현재는 ‘스튜디오에이비’라는 이름의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건축이 아닌 다른 일을 선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책 없는 짓이 아니었나 싶다. 대학원을 마치고 대다수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설계사무소에 입사했다. 설계스튜디오에서 도면으로만 접하던 일을 실제로 진행하면서 얻는 즐거움도 컸지만 일과 개인생활이 분리되지 못하고 쉼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도 많이 지쳐 있던 터라 잠시 쉬면서 여행도 좀 다니고 그간 읽지 못했던 책이나 실컷 보자는 철없는 생각으로 덜컥 회사를 그만뒀다. 그렇게 쉬던 중 지인의 출판사에서 건축 관련한 책을 만들고 있는데 아무래도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디자인을 좀 봐주면 어떻겠냐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접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이어나간 작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통념상 북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책(단행본) 외에도 성격이 비슷한 잡지, 기업의 홍보물, 전시도록, 포스터 등 여러 시각디자인 영역의 일들을 함께하고 있다. 아무래도 전공이 건축이다 보니 건축사무소 관련 포트폴리오나 건축가들의 도록 등의 일이 많은 편이고 단행본 디자인 의뢰도 건축분야 서적에서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디자이너로 일하며 건축을 공부한 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고 싶다.
책을 디자인한다고 하면 건축설계와는 완전히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접해보면 의외로 공통분모가 많다.

건축가가 처음 대지를 접하고 거기에 앉힐 건물과 외부공간 등의 형상을 떠올린다면, 북디자이너는 종이의 크기와 질감을 정하고 거기에 앉힐 글자의 크기와 서체, 그리고 그 외 요소들의 배치를 고려한다. 그 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비례, 비움과 채움, 기능적 요구들의 충족 등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북디자이너라는 직업에는 어떤 능력이 요구되는가?
시각디자인은(3차원의 공간을 다루는 건축과는 달리) 2차원의 면을 아름답게 구성하는 능력이 중요하고 북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거기에 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특별한 자격증이나 능력 보다는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고 많이 보는 습관이 요구된다.

간혹 디자인 능력만 뛰어나고 의욕이 앞선 디자이너들이 만든 책을 볼 때가 있는데, 언뜻 보기는 좋으나 읽기에 불편하고 글을 읽는 맛을 반감시키는 디자인인 경우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편집디자인은 어디까지나 내용의 뒤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지나쳐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글의 내용을 잘 살리고 거기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일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지식과 함께 콘텐츠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이는 어렵다.

실무적인 면에서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다뤄야 하는 몇몇 프로그램들이 있으나, 건축설계를 전공했다면 대부분 다룰 수 있는 것들이므로 기술적 측면에서 큰 어려움은 없다.

 

북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다 보니 간혹 취업이 힘들거나 회사생활이 맞지 않아서… 라는 이유로 프리랜서로 이 직업을 선택하려는 학생들의 상담을 받곤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프로그램도 대부분 다룰 수 있는 것들이고 건축설계를 배우면서 패널이나 제안서 등을 멋지게 꾸려본 경험도 있으니 시각디자인 분야로 어렵지 않게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회사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자영업이나 프리랜서로도 성공하기 어렵다.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능숙히 다뤄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 외에도 더 많은 부분에서의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북디자인이라는 분야 자체로의 진로를 이야기하자면 우선 SBI나 각종 출판관련 단체에서 운영하는 북디자이너 양성과정이 있다.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지 여부를 떠나 책을 만드는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므로 위 과정을 수료하는 것이 좋으며, 이를 바탕으로 업계 사람들과 네트워크도 형성해야 한다. 출판사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취직하여 경력을 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느 정도 경력과 수주능력이 생겼다면 독립하여 자신의 이름을 걸고 디자인을 할 수 있다.

 

비전공자로 일하는 데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시각디자인 업계에도 나름의 ‘바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좋게 이야기하면 관련직업 종사자들 간의 네트워크일 수도 있고 조금 부정적으로 보자면 학연을 기반으로 형성된 일종의 집단문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규모는 작지만 어쨌든 사업이다 보니 일을 수주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아무래도 비전공자의 네트워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보통의 시각디자이너가 접하기 어려운 건축관련 프로젝트들을 비교적 쉽게 수주하고 있으니 비전공자로서의 어려움만큼이나 이점도 있는 것 같다.

 

북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세계적인 건축가의 도록 디자인을 맡아 제작까지 책임지는 일이었는데 예상보다 변수가 너무 많았다. CAD도면 데이터를 실수없이 인쇄하는 것부터(인쇄와 출력은 많이 다르다) 특유의 회색 질감을 정확히 표현해내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인쇄기 옆에 붙어서 삼일 밤낮을 눈 빠지게 지켜보고 나서야 책 한 권이 완성되었고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고생 뒤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그 뒤로 디자인, 제작을 하게 되는 건축 관련 프로젝트들에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준 프로젝트이다.

 

건축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는지 궁금하다.
실내건축과에 출강 중이기도 하고 건축 디자인, 시공 관련 클라이언트들과의 미팅도 잦은 편이다 보니 지금도 건축을 떠났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직접 설계에 참여하는 일은 없지만 덕분에 한발 물러서서 건축설계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점도 있다. 크게 보아 디자인이라는 틀에서 작업을 계속하는 이상 학부 때 배운 건축설계와의 접점은 계속 늘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건축설계에 비해 책은 디자이너 한 명의 역량이 집중되어 자신의 색을 나타내기 쉽고, 상대적으로 프로젝트의 기간이 짧아 1년만에도 여러 권의 결과물을 볼 수 있는 보람도 있다. 물론 반대의 이유가 건축설계의 매력이기도 하다.

주변에서 설계사무실을 다니기 힘들어 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문의를 적지 않게 받는 편이고, 나 역시 설계사무실을 잠시나마 다녀본 사람으로써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물론 여유 있는 삶을 즐기면서 경제적 여유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으나 “더 편하고 잘 벌기 위해서”라는 것이 모든 판단의 전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스스로에게 물어 꼭 건축설계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더 좋아하고 관심있는 일,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유독 건축관련 분야는 다른 전공분야에 비해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 같다. 바꿔 말하면 건축을 배웠다는, 한다는 것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일 수 있겠지만 때론 그런 자부심이 다른 분야로의 무관심이나 자만심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봤다. 건축은 좁은 분야를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필요로 하는 학문인 만큼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주변의 다양한 일들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어떤 일이라도 잘 해낼 수 있는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이 인터뷰는 월간 건축문화 2019년 2월호(453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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