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2월 1, 2020

[Interview] 건축잡다_성기윤, 아름다운 언어로 건축을 말하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성기윤_통역사

국제회의 통역사 겸 영어 MC로 일하고 있다. 학부에서는 건축을 전공했고, 통역대학원에서 한영국제회의를 (동시통역) 전공했다. 통역사로 일한지는 9년 정도 됐고, 프리랜서 통번역사로는 5년차를 맞았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전에는 삼성전자, LG전자, KOTRA 등에서 사내통역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건축을 전공하게 된 계기와 통역사로 일하게 된 전환점이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면 건축이 무엇인지, 건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로 대학에 입학했다. 그저 수능 점수에 맞춰서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는데, 막연히 디자인이나 감각적인 부분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학과를 선택했다. 다행히도 나와 잘 맞아서 학부시절에는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신나게 공부를 했다. 그리고 4학년이 되는 겨울방학에 깊은 고민을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분야가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미래 먹거리는 무엇일까?’ 등의 고민이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나 나름대로는 통일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통일이 되면 또 한번의 건설 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도시 계획을 공부해서 미리 통일을 대비하겠다는 원대하고도 당돌한 꿈을 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중견 건설, 건축자재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신났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내가 극복할 수 없는 한계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소하지만 당시 회사는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맥주 한 잔씩 하는 문화가 있었다. 나는 술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문화적인 문제가 조금 힘들었다. 전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평등하게 실력으로 평가받으면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답이 통역사였고, 이후 통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했다. 이렇게 시작된 일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건축을 전공한 것이 현재의 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듣고 싶다.

우선, 통역사 중에서는 이공계 전공자가 매우 드물다. 인문/어학 계열 출신 통역사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공계적 논리나 흐름을 어려워하는 동료가 간혹 있다. 이렇듯 이공계 분야에 대해서 조금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것도 건축공학 전공자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건축 디자인 쪽을 깊이 다루다 보면 한국말로 설명해도 알아듣기 어려울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조금 이해하는 것이 수월한 편인 것 같다. 현재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통역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건축/도시에 대한 지식을 계속 쌓아서 나만의 전문 분야를 만들고 싶다. 직업적 전문성에 분야의 전문성을 얹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건축, 도시, 공학 분야의 통역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통역사가 되고 싶다.

통역사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달라.

몇 년 전에 한 행사의 MC와 통역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 나중에 관련 자료를 받아 보니 건축 분야였다. 그 일을 진행할 때 나는 전체 행사 MC를 하면서 동시에 초빙 강사로 온 스위스의 한 유명 건축가의 강연 통역까지 진행했다. 프리랜서가 되고 난 뒤 처음으로 맡은 건축 행사여서 매우 설레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도 준비를 철저하게 많이 하는 편인데 그 행사는 더 많은 준비를 했다. 사실, 당시에는 통역이 잘 됐는지, 사회를 잘 봤는지조차 생각할 여유 없이 일에 몰입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관계자 분들이 나를 좋게 봐주셨고, 그 행사를 계기로 지금까지도 관련 행사에서 통역과 MC를 도맡아 하고 있다.

또, 작년 가을에는 2018제주국제건축포럼 MC를 맡기도 했었다. 행사 당일 점심 시간에 복도에서 어떤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해서 인사를 나눴는데, 알고보니 대학 동기였다. 졸업하고 처음 만났는데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친구와 동기들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문득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감격스럽기까지 했던 기억도 있다.

전공과 다른 일을 할 때에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좋든 싫든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일 것이다. 나 역시도 보장된 정규직을 뒤로하고 합격 여부조차 불투명한 통역대학원 입시생이 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물론 대학원에 합격한 뒤에 공부하는 것 더 힘들었다.

통역을 하는 자리에 가면 사실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몇 년 씩 그 분야에 종사한 전문가들이다. 이런 전문가의 말을 그 분야의 문외한인 통역사가 통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통역 전에는 정말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사전에 관련 자료를 주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자료나 가이드 라인이 있으면 그 자료를 토대로 필요한 논문이나 기사를 찾아가며 공부를 해서 어느 정도 상황에 대비할 수 있지만, 자료를 주지 않는 경우는 무척 난감하다. 온갖 경우와 상황을 추측해가며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은 통역사가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내용을 문제없이 한국어와 영어로 능통하게 바꿔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 말도 맞지만, 통역사는 단어를 일대일로 치환하는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이야기와 논리를 풀어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준비할 때는 어느 정도 주최 측의 협조가 필요한데, 이 부분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 낮은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다행히도 어려움보다 즐거움이 더 크다.

현재 준비 중인 새로운 작업이나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당분간은 현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내 꿈은 65살까지 통역을 하는 것이다. 인지도와 경력, 그리고 실력을 열심히 쌓아서 ‘성기윤’이라면 마음 편히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통역사가 되고 싶다.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겠지만, 건축 관련 분야의 전문 통역사로 인정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그렇게 되기 위해 통역 외에 별도로 꾸준히 건축도 공부하고 있다.

다시 건축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어떤 면에서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건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통역을 시작하기 전에 늘 ‘내가 제대로 통역을 해야 청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얻어서 자신의 학업과 사업에 도움이 되겠지. 그러니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자’ 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최근에는 건축 관련 통역이 꽤 많았다. 통역사로서 강연자의 의도를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청중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보이지 않는 역할로 건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는 더 이런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혹은 다양한 형태로 건축을 하는 건축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달라.

지금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에 좀 더 열심히 욕심을 내면 결국 그것으로 인해 인생의 새로운 실마리가 풀리게 될 수 있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나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서른 살 가까이 때까지 통역사를 업으로 삼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것이 많았고, 영어는 그저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인 정도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살면서 잠깐이라도 관심을 갖고 집중했던 것이 지금 일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목표를 이뤄가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고 뭐든지 나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아직 목표 달성을 위한 여정 위에 있으니 나를 포함한 모두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즐겁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했던 내 모습이 현실의 나와 일치해 있으리라 믿는다.


인터뷰 진행: 최지희 기자 / 사진제공: 성기윤

::이 인터뷰는 월간 건축문화 2019년 7월호(458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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