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잡다] 따뜻한 건축적인 시선으로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_정진호

 

정진호_그림책 작가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그림책을 그리고 쓰고 있는 그림책 작가다.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건축을 공부하다가 지금은 이야기 속에 집을 짓고 있다.

 

처음 건축학과는 지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건축을 배우면서 느낀 점과 건축학과를 다니던 시절의 “정진호”는 어떤 건축학도였는가.

작은 아버지가 건축가셨다. 지금은 아라리오 뮤지엄으로 바뀐, 옛 공간 사옥에서 근무하셨는데, 서울에 놀러갈 때마다 꼭 거길 데려가시곤 했다. 복도를 한 번 지나면 완전히 새로운 장면이 펼쳐지던 공간 사옥은 어린 시절 참 신비롭고 재미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건축에 대한 흥미를 키워가다 고등학생 때 결국 건축학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됐다.
건축을 공부하며 제가 느낀 것은 건축이란 결국 ‘눈’을 뜨게 하는 공부였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단순히 공간뿐 아니라 도시와 사회의 맥락을 읽어내는 시선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학생 때는 공간을 구성하고, 평면을 짜는 일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을 읽어내고 도시와 장소의 이야기로 설계 작업을 풀어내곤 했다.

 

언제부터 그림작가 일을 시작했는가. 그림책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데, 건축을 전공했다고 하니 전혀 동떨어진 세계에 있던 사람이 어느 한순간 작가로 데뷔했다고 여긴다.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좋아했고, 꾸준히 읽어왔으며 습작도 오랜기간 해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짧은 동화를 쓴 이후로 취미는 그림책을 읽고 만드는 것이었다. 원래는 글만 써오다가 2012년에 그림책 공모전에서 수상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도 함께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두 편, 취미로 만들기 시작한 그림책 중 한 권이 출판사와 계약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꿈꾸게 됐다. 흔히 말하는 ‘취미가 직업이 된’ 케이스다.
2014년, 졸업과 거의 동시에 첫 책이 출간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물론 처음에는 홀로 생계를 책임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건축을 전공한 그림책 작가’라는 점이 이때 큰 도움이 되었다. 의외로 건축적인 소견을 갖춘 그림작가를 찾는 곳이 많다. 모 아파트 설계팀에서 의뢰를 받아 조경설계를 홍보하는 책자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여행 에세이에 들어가는 지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성경 그림책 전집을 기획하던 출판사에선 건축을 전공했으니 바벨탑 이야기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일러스트를 그리며 틈틈이 창작 그림책을 한두 권씩 늘려 갔고, 지금은 온전한 작품 활동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됐다.

 

그림책 ‘벽’ 내용 中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그림책 시상식이 열리는 볼로냐 도서전에서 <벽>이라는 그림책으로 2018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했다고 들었다. 수상한 그림책에 대한 내용과 볼로냐 라가치상에 대한 간단한 수상 소감을 듣고 싶다.

<벽>은 구상했던 건축 3부작 중에 마지막 권으로, 앞선 두 권을 함께 봐야 책의 콘셉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3부작 중 첫 번째 책인 <위를 봐요!>는 평면도의 시선으로 그린 책이다. 주인공인 수지가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책 전체가 구성되어 있다. 그 다음 책 <별과 나>는 단면도, 즉 옆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책이 진행된다. 그리고 3부작 중 마지막인 <벽>은 투시도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평면, 단면, 투시도가 세 권의 책의 콘셉트다. 즉, 건축을 공부하며 배웠던 세 가지 시선이 책 세 권이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벽>은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 건축을 향한 애정을 가득 담아 만든 책이다. 벽은 공간을 만들고, 안과 밖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데 도대체 어디가 안이며 밖인지, 무엇으로 그 기준을 정하고 보는가를 책은 묻는다. 이 책으로 2018년 볼로냐 도서전, 건축과 디자인 부문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볼로냐 시상식 장에서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 건축적인 시선으로 책을 만들어온 그간의 작업들이 한꺼번에 인정받았다고 느껴졌던 것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그림책 ‘별과 나’ 내용 中

 

전공과 다른 일을 선택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는가.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가능했다. 갓 졸업하고 세상에 나온 철부지였기에 앞뒤 잴 것 없이 기꺼이 도전할 수 있었다. 만약 제가 졸업 후에 직장을 다니며 취미로만 계속 그림책을 만들어왔다면, 아무리 좋은 책을 구상하고 만들었더라도 온전히 작가로 활동하리라 결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계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앞을 막았을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끌리고 좋아하는 일에 투신할 수 있었던 그 당시의 내 자신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

 

건축을 전공한 것이 현재 일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건축적인 시선과 소재로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로서, ‘건축으로 그림책하고, 그림책으로 건축하기’ 라는 문장으로 나의 작품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 건축을 전공했기에 가능한 건축적 사고는 이야기의 토대를 만들며 건축적인 시점으로 책의 구도를 잡는다. 제 안에서 건축과 그림책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데뷔작인 <위를 봐요!>가 출간되었을 때, 그림책 평론가들은 완전히 새로운 구도와 시점을 표현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막상 저는 그런 평이 이상했다. 왜냐하면 가장 익숙하고 잘 다룰 수 있는 평면도의 시점으로 책을 만들었을 뿐이지 않나. 건축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시선이 다른 곳에선 굉장히 신선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다른 작가와 구분지을 수 있는 특징이 바로 건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건축은 그림책 작가로서 가장 큰 정체성을 부여해 주었다.

 

그림책 ‘위를 봐요!’ 내용 中

 

정진호 작가의 장단기 목표는 무엇인가.

아래는 <벽>으로 라가치상을 수상했을 당시의 심사평이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탐색하도록 초대하면서 한 어린이와 주변 세상의 공간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어린이의 관점에서 건축적인 모습들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하고 싶은 것들이 바로 저 문장에 담겨있다. 건축적 시선과 소재로 그림책을 만들고,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야기와 건축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혹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건축인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건축은 ‘시선’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을 업으로 삼는 분들은 분명히 좋은 눈과 감각을 갖추고 있다. 그 눈은 작은 공간과 낮은 자리를 보는 따뜻한 시선이 되기도 하고, 사회와 도시의 모습을 읽어내는 크고 담대한 눈이 되기도 한다. 그런 눈은 어디를 가더라도 놀랍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던질 수 있다.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길 바란다.

인터뷰 진행: 고현경 기자 / 자료제공: 정진호

 

::이 인터뷰는 월간 건축문화 2021년 3월호(478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