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9월 17, 2019

건축가처럼 사는 삶, 운생동 건축

Living like an architect, Unsangdong Architects

12월이 되어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 시간은 무척이나 빠르고 아쉽다. 연 초에 다짐했던 일은 몇 개 하지도 못했는데 또 새해를 목전에 두었다. 허겁지겁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아쉬운 일이 먼저 떠오른다. 더 많은 전시에 가볼 걸, 더 많은 책을 읽어볼 걸,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볼 걸 하는 후회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올 연말은 풍성한 전시와 대담으로 마무리를 하는 기분이다. 지난 달 소개했던 (사)한국건축설계학회(이하 설계학회)의 운생동건축사사무소(이하 운생동)의 전시로 아쉬운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계학회 갤러리인 ADIK갤러리에서 진행된 운생동의 전시는 지난 11월 16일에 막을 내렸다. 지난 달 소개한 것처럼 이번 전시는 운생동의 건축 모형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월간 건축문화에서도 많은 문의전화를 받았다. 건축과 학생, 건축 종사자 등이 운생동 전시에 대해 물었다. 아마 ‘운생동’이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번 달 월간 건축문화에서는 지난 달에 예고했던 대로 전시 오프닝 세미나를 소개할 예정이다. 오프닝 세미나는 운생동건축사사무소의 장윤규 대표의 발표로 채워졌다. 오프닝 세미나는 그의 작품과 그간의 운생동의 작업을 소개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철학과 운생동의 발자취를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세미나의 내용을 소개한다.

 

전시 오프닝 세미나_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장윤규 대표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책에 글을 써 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오늘의 세미나는 운생동의 건축작업을 보여주는 세미나가 아니다. 운생동에 중요한 것은 작품 사이에 숨어있는 내 삶의 단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늘 이 세미나에서는 나의 삶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27살, 대학원을 졸업하자 마자 작업실을 열었다. 서울건축이라는 사무실에 다니면서 밤에는 스스로의 작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실을 열었다. 당시에는 실크스크린이라는 기법이 있었다. 패널을 만들 때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만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악연인지 모르겠지만 당시부터 투잡(Two job)을 했다. 밤에는 개인 작업을 하고 낮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지냈다. 집도 없이 작업실에서 생활했다. 젊은 시절의 객기로 24시간 일을 할 순 없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개인 작업실에서 일을 했다. 처음엔 이렇게 건축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건축을 그만두고 작업실을 옮겼다. 두 번째 작업실은 쌍문동 근처의 10평짜리 작업실이었다. 이 때는 프리랜서로 일을 했는데, 주로 대형 설계사와 함께 일을 했다. 조금 더 진보적으로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규모가 큰 회사와 협업을 했다. 이 때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작업실에서 개인 작업을 하며 지냈다.
나는 이집트대사관 작품이 당선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젊은 시절의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내 아뜰리에 자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지어지지 않는, 아이디어를 상상하고 끊임없이 만드는 일을 했다. 국제 현상설계에 참여하거나 가상의 프로젝트를 스스로 만들어서 미리 일을 하곤 했다. 그런 습성 때문에 지금의 틀을 그 당시에 만들어 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 하는 건축을 20대~30대에 이미 만들어 놓고 지금에 와서야 활용하는 것 같다.

대형 설계사와의 협업 이후 건축실험 아뜰리에로 우뚝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완벽하게 독립을 해서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였는데, 내가 직접 한 달 동안 모형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의 크기를 생각하지 않고 모형을 만든 것이다. 밖으로 모형을 가지고 나가려면 문을 통해 나가야 하는데, 문 크기보다 모형이 컸다. 그래서 모형을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모형을 톱으로 썰어서 밖으로 나갔다.(웃음) 그 때도 항상 드로잉을 했다. 여기 있는 운생동 직원들이 지금 보는 내 모습과 무척 유사할 것이다. 아직도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렇게 지내던 중 나의 멘토 같은 역할을 하던 한 친구가 언제까지 실험적인 디자인만 할 것이냐며 타박을 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운생동’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 때부터 운생동이 시작되었다. 신사동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다. 초기 운생동에서 예화랑 같은 건물을 만들었다. 예화랑은 독특한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에 운생동에는 특별한 일이 없어서 동네 부동산에서 농담을 하고 놀고 있었다. 그런데 부동산에 갑자기 어떤 분이 들어와서는 부동산 사장님께 설계 잘하는 사람이 없냐고 묻는 것이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나를 가리키며 여기 설계 잘하는 사람 있다고 하면서 그 분에게 나를 소개를 해줬다. 그렇게 해서 예화랑을 설계하게 되었다. 이런 우연과 에피소드가 운생동을 만들게 된 것 같다.
신사동에서는 굉장히 재미있게 지냈다. 그 때가 운생동 건축의 토대를 만들던 시기였다. 많은 초기 작업을 했던 곳도 신사동이다. 당시 나는 신사동 사무실에서 거주하면서 일을 했다. 소파를 붙여 잠을 자면서 생활했다. 이후에 내가 국민대로 가게 되면서 사무실을 대학로로 옮기게 되었다. 대학로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문화인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금 다른 형식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갤러리 정미소를 운영하고 출판사를 만들었다. 대학로 사무실은 지하 공간이 있었다.
간판이 없는 지하 공간인데, 모형을 만들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갤러리 정미소 공간도 함께 운영했고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건축의 폭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갤러리 정미소는 거대한 유리판이 있고, 로비 공간과 갤러리가 합쳐진 공간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대학로 사무실도 점점 좁아졌다. 모형과 패널이 많아지고 작업물도 많아져서 공간이 채워졌다. 포화된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 혼자 옆에 있는 한옥을 빌려 사무실을 차렸다. 조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한옥을 하얀색의 모던한 공간으로 꾸며 새로운 고민을 했다. 그리고 대학로를 떠났다. 지금은 성북동에 자리를 잡았다. 건축을 하다 보면 풍수를 하는 분들을 만나는 일이 많은데, 대학로 시절에 풍수를 하시던 한 분이 대학로를 떠나라고 했고 마침 성북동의 집을 한 채 구해 사무실을 옮겼다. 성북동 사무실은 마당이 있어서 무척 좋다. 직원들이 마당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쉴 수 있다. 내가 집을 선택한 이유는 직원들이 집에 대한 생각을 해보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원은 아파트에 거주하기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을 느끼길 바랬다. ‘집’은 굉장히 할 일이 많다. 오피스 공간이 아닌 ‘집’을 선택하면 끊임없이 수리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건축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설계를 한다.
작업을 하면 많은 결과물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컨테이너에 우리의 작품을 모아둔다. 갑자기 지난 프로젝트가 생각나면 컨테이너에 가서 그 모형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다시 확인을 하곤 한다. 여기까지가 현재 운생동의 모습이다.

이제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웃음) 그래서 아들과 함께 노는 것을 즐긴다. 특별하게 노는 것이 아니라 블록을 맞추곤 한다. 블록을 가지고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가 4살 때부터 블록을 가지고 놀았는데, 아이와 놀면서 나의 건축 역시 성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나의 건축에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준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아이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색깔별로 블록을 모아 새로운 오브제를 만들기도 하고 블록을 가지고 설계를 하기도 한다. 또, 기차를 탔으면 기차를 만들고, 남대문을 보고 오면 남대문을 만든다.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2층 버스를 만들고 난 뒤에는 더 높은 층이 있는 버스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를 결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후에는 스케일이 점점 커진다. 비행기를 만들면 공항을 만들고,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적인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점점 큰 형태를 만들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나의 건축의 근본적인 바탕은 재미, 놀이이다. 쥐어짜듯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놀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와 협력을 통해 완성하는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의 삶의 단편과 사무실의 삶의 단편이 겹쳐지면서 나름대로 건축적인 새로운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는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인처럼 사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건축가 역시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처럼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오늘 강연에서 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어쩌면 쑥쓰러울 수 있는 본인의 삶을 덤덤하게 이야기 한 장윤규 소장. 그의 독특한 건축 철학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아이와의 교감과 놀이를 통해 새로운 건축적 생각을 구현하고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를 보니 그의 삶과 건축이 무척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미나 이후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운생동 건축의 작업과 독특한 건축 철학에 대해 묻고 귀 기울여 운생동의 답변을 듣는 모습을 보며 한국 건축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 : 박소정 기자

 

*위 기사는 월간건축문화 12월 호(V. 451)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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