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0월 18, 2018

[1.세운상가 편] 그 곳 그 사람들 이야기

우리는 제일 먼저 이 상가 군단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세운상가를 방문했다. 그 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곳곳에 계셨다. 35년 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세운상가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그 곳을 고맙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젊은 날을 추억하며 찾아오는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 그 모습들 안의 솔직한 이야기를 꾸밈없이 담아내려 한다. 최근 35년 만에 또 한 번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세운상가의 숨겨진 기억들을 찾아보자.

ⓒ Phtographer : 김현경

“평생 이거 밖에 안했어. 다른 걸 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놀러오지. 여기가 내 놀이터야.”
“지금까지 해 온 것만큼만 열심히 하고 싶어.”
“옛날에는 엄청 잘나갔지. 아시는 분들은 다 알아.”

ⓒ Phtographer : 김현경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상가를 계속해서 걸었다. 우리는 왠지 모르게 갈수록 조용해졌고, 길 끝에서 매점 하나를 발견했다. 1평도 채 안 되어 보이는 매점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매점 안에서 작은 몸을 이끌고 매점을 운영하시고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1_ 3층 매점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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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tographer : 김현경
Q 여기서 언제부터 일하셨어요?
A 69년도부터 일했지. 여기가 새로 생기고 1년 정도 있다가 내가 들어왔지.

Q 세운상가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다른데, 그 때 분위기가 어땠어요?
A 예전이랑은 많이 달라졌지! 아니 제일 초반에는 또 손님이 많이 없었어. 텔레비가 생기면서 텔레비 가게를 하면서부터 여기가 많이 번창 한 거야. 제일 초반에 시작할 때는 2층에 옷가게도 있었고, 잡화도 있었고, 그렇게 상가들이 들어 있는 식이였어. 근데 2층에 불도 났었고, 그다음에 또 텔레비가 들어오면서 세운상가가 이렇게 일어난 거야.

Q 몇 년도 정도까지 사람이 많았어요?
A 사람이 많았지. 그 전에는 여기 앉아 있으면 사람들에 가려서 저 끝까지 길이 안보일 정도였어. 근 35년 전까지는 그랬을 거야. 근데 이제 전자제품이 용산으로 넘어가면서 장사가 잘 안되니까는 이제 부품상가가 들어 온 거지. 그런 것들은 회사에서 납품하는 거니깐 전화로 해결을 하고 배달하고 이러면서 세운상가가 확 죽어버렸어. 그러니까 인제 사러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

Q 실례가 안 된다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A 나? 팔십! 그냥 늦게 나왔다가 일찍 들어가. 여기 지금은 장사도 안 돼. 근데 집에 있으면 그렇게 아프고, 눕게 되니 깐은 나와 있는 거지. 할 거 없어도 그냥 나와 앉아 있는 거야. 지금은 여기 매점에 뭐 사러 오는 사람도 없어. 나오면 그냥 상가사람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사람 구경도 좀 하고 그런 거지.

Q 69년도부터 이 자리에서 계속 매점을 하신 거예요? 정 드셨겠어요.
A응, 그렇지. 여기서 이 자리 그대로. 그러니깐 장사가 안 되도 나와 있지.

Q 리모델링 이야기 들으셨어요?
A 근데 내가 생각 할 때는 바깥에 꾸미는 거는 좋은데, 안에 상가들이 폐물이나, 옷가게, 화장품들 같은 걸로 해야 손님들이 구경하고 와서 사게 되지. 지금 현재 이렇게 전자제품을 계속 해가면서야 여행객들이 뭣 하러 사러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은, 안에 내용물이 바뀌어야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지. 솔직히 지금 여기 와서 살게 뭐가 있어. 그런 소리야. 옛날에는 장사 잘 될 때는 사람도 써가면서 했다니까.

Q 많이 오시는 분인가 봐요? (손님이 왔다 가셨다.)
A 그냥 뭐 나 없을 때 자기들이 알아서 가져가는 거야. 모든 걸. 돈도 저기 넣어두고. 사실은 여기서 내가 최고 오래 됐어.

Q 그럼, 눈에 익은 사람들이 많으시겠어요?
A 그렇지. 예전에 전자 제품할 때는 많지. 옛날에 잘 될 때는 이런 가게 하나에 직원들이 3~4명 있었어. 지금은 가족들이 이어서 하던가 하지.

Q 처음 지어졌을 때는 이 건물 5층이 아파트였지 않아요?
A 그렇지. 5층이 아파트였지. 거기 사람들은 4층에 매점 있잖아. 거기에 또 4층에 당구장이나 이발소도 있었던 거고. 그런 식이였어. 이제는 잘 안되니깐 싹 다 없어진 거고.

Q 할머니께 이 세운상가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A 자식들이 그런다. ‘엄마 나갈 때 있는 걸 좋게 생각 하세요’ 예전에는 젊어서 했던 일이지만, 지금은 놀러오지. 내 놀이터지.

매점 할머니와 인터뷰가 끝난 후, 주변 부품관련 상가를 둘러보던 중에 전자상가에서는 보기 드문 가게를 발견했다. 이 주변은 대부분 전자제품이나 부품관련 상가들이 있는 곳인데, 그 틈에 병풍과 자수를 판매하는 가게가 있었다. 가게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 키만한 병풍들이 가게의 절반 넘게 자리하고 있어 좁아보였다. 아주머니는 찾아 온 손님과 상담 중이셨고, 상담이 끝난 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2_금강화랑 병풍대부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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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tographer : 김현경
Q 이 일을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A 40년. 나는 초창기부터 이 일을 하기 시작 했어. 배운 거지. 저쪽에서 있다가 일로 이사 온 거야. 저 쪽 현대 상가에 있다가.

Q 이렇게 온라인으로 하시는 거예요? (컴퓨터로 주문을 확인하고 계셨다.)
A 응. 여기 보면 이 안에 수놓는 아이템이 다 있어. 온라인으로 저기 들어가면 공장 주소나 사진 같은 것들이 다 있어. 공장에서 일하는 과정도 다 찍어서 올려놓고 그랬어.

Q 그럼 되게 크게 하시는 거네요?
A 지금 동생이랑 이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몇 개 놓고서는 못해. 우리는 인사동에 큰 공장도 있고 그래서 하는 거지.

Q 40년 전에는 이런 종류의 가게가 많았어요?
A 그때는 저쪽 상가에 많이 밀집되어 있었어. 예전에는 이런 거 파는 상가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들 뿔뿔이 헤어지고, 오래하다 보니까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옛날에는 물건 몇 개놓고 앉아서 장사하고, 저런 명주 실 같은 거 팔고 그랬는데. 만날 남의 집에 물건 가지러 가니까 가게를 조그마하게 하면 힘들어요. 사다 팔게 되면 마진도 별로 없고. 가게를 우리처럼 좀 크게 해야 이득이 좀 되고 그래. 우리는 여기에도 창고가 몇 개 있어요.

Q 병풍 종류가 되게 다양한 것 같아요.
A 동양화, 민화 이런 것도 있고, 품목이 다 달라. 똑같은 게 없어. 그런데도 없는 것들이 있어. 저기 뒤에 창고에도 되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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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tographer : 김현경
Q 수놓는 디자인은 누가해요?
A 내가 이런 걸 도안을 다해. 손님 분들 중에는 있는 거 사 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원단 같은 거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우리는 하나하나 제작을 다 해줘. 개개인 마다 하려고 하는 게 다르니까 손이 많이 가는 일이야. 또 나 혼자서 할 수는 없으니까 *수틀 매가지고 자수 놓는 것도 가르쳐주고 그랬지.

*수틀[자수틀] : 자수 천을 팽팽하게 하는 장치. 크기가 큰 작업을 할 때 사용한다.

Q 그럼 수놓는 교육도 하시는 거예요?
A 옛날에는 많이 했는데, 이제는 힘들어서 안 해. 그리고 이제 자수라는 걸 많이들 안 찾아. 옛날에는 학교에 자수 수업이 다 있었잖아. 다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져가지고. 그 전에는 자수 수업하는 학교에도 납품을 되게 많이 했었는데 과목이 없어져가지고…….

Q 손님들이 주로 어떤 경로로 찾아오나요?
A 단골들이 많지. 우리는 인터넷 물건하고는 틀려요. 이런 표구는 인터넷보고서 하면 안돼요. 직접 봐야해. 주로 보면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보고, 병풍을 많이 구매하는데, 인터넷 물건은 쉽게 말해서 중국에서 반제품해서 갖고 와 가지고, 여기서 작품만 붙이는 식이지. 완성품을 해서 제사 병풍 같은 거 8폭에 20만 원 짜리도 있고, 90만 원 짜리도 있고 이런 것도 있던데. 근데 우리랑은 *표구 자체가 다르다 이거지. 우리한테는 틀 값도 안 되니까.

*표구 : 표구(表具)란 종이·비단·세면(細綿=統) 등에 쓰인 서화(書畵)를 보존하기 위하여 얇고 질긴 종이를 밀착시켜 안감을 대는 것을 말한다.

Q 아까 그 손님 분은?
A 청주에서 오셨어. 우리는 전국구야. 각 지역에서 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바이어들도 오고. 옛날에는 엄청 잘나갔지. 아시는 분들은 다 알아. 금강화랑 모르면 간첩이지 이 업계에서.

Q 병풍하나 제작하는데 얼마나 걸려요?
A 일주일 정도 잡아야죠. 말려야하니까. 비싸요, 표구 때문에.

Q 시장이 많이 변했나요?
A 옛날에 비해 손님이 10분의 일밖에 안돼요. 우리는 특급호텔을 거래하는 업체인데, 너무 비수기라 경기가 없어요. 여름에 7~8월까지는 좀 한가해. 가을정도 되면 행사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많아요.

Q 40년 정도 하셨으면 자부심 있으시겠어요.
A 우리는 경제신문에도 나가고, 저기 방송국에서 몇 번 씩 나오고 그래. 공장에 와서 표본 찍고 이런 거 촬영하고 그래. 우리 집이 장인집이야.

Q 젊은 사람들한테는 이런 거 자체가 좀 새로워요.
A 그렇지. 젊은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몰라. 예전처럼 수놓는 수업을 학교에 넣어야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까 정서가 더 매 마른 거 같아. 아무래도 이런 걸 하면서 집중을 하다보면 인내력도 기르고,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되는 건데. 요즘 학생들은 그런 게 없잖아.

Q 일하시면서 힘들었던 사건은?
A 우리는 진상손님도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해. 그런 사람은 드물지. 왜냐면 여기는 중요한 손님을 상대하는 직업이라서 그럴 것 같은 손님은 아예 안 받지. 난 안경 쓰고 호리호리한 사람이 싫어. 여자고 남자고 간에 호리호리한 사람은 변덕스럽고 못 참고 그래. (아주머니 개인의 취향)

Q 아주머니께 이 세운상가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A 인내를 길러준 곳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은 별로 좋지는 않아요. 볼거리가 없잖아. 옛날에 저기 있을 때는 볼거리가 많았는데. 별의 별꼴 다 봤지. 이제는 다 수긍하고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해 인내력을 갖고 살아야지.

Q앞으로의 계획은?
A 딱히 없어. 하던 거를 유종의 미를 거둬야하니까. 구석구석에 물건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장사를 오래하다 보니까 이렇게 많이 늘어나는 거야. 지금까지 해 온 것만큼만 열심히 하고 싶어.

인터뷰가 끝날 때 쯤 가게로 주문 전화가 들어왔다. 손님과 통화가 길어진 탓에 아주머니는 우리한테 손짓하셨고, 우리는 인사를 드리고 나오게 되었다.

시대가 서서히 변하면서 세운상가가 침체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수히 많았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맞은 상가 군단에서 병풍 상가의 명맥을 잇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병풍이라는 그렇게 많지 않은 부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며 꿋꿋하게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대단해보였다.

병풍 아주머니께서는 젊은 사람들은 빈티지 라디오를 구경하러 많이들 간다고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라디오 상가 쪽으로 발길을 돌렸고, 인터뷰는 잊은 채로 빈티지 라디오를 구경하던 중 감미로운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가게를 발견했다. 돌아가는 턴테이블 뒤편으로 백발의 아저씨께서 웃으며 반겨주셨다.

3_음악을 사랑하는 오디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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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tographer : 김현경
Q 언제부터 가게를 운영하셨어요?
A 79년도부터인가? 30년 넘게 했지.

Q 이 자리에서 계속 하신 거예요?
A 아니에요. 저 뒤쪽 청계 상가에 있다가 이쪽으로 왔어요. 온지는 한 1년 되었나? 원래는 저기 길 건너 청계 상가에서 오래했어요.

Q 그렇다면, 1년 전에 세운상가로 들어온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A 아, 저쪽이 오디오 가게들이 많이 없어지고, 다른 업종들이 자꾸 들어오다 보니까. 지금 저쪽에 가면 몇 군데 안남아 있어요. 허허. 그래서 이쪽으로 온 거지요. 그래도 여기 세운상가는 아직까지 오디오가 좀 있으니까. 같은 업종끼리 어울려 있어야 그나마도 조금 낫지. 그런데 옛날에는 저쪽이 더 오디오가 활성화 되어 있었어. 이쪽보다도 더. 용산전자상가가 오픈하기 전까지는 저쪽 청계 상가가 훨씬 더 활발했어요. 원래는 이쪽이 저쪽보다 크지를 못했어. 지금은 역전 되어버렸지만.

Q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A 원래는 그냥 음악을 막연히 좋아했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오게 되었고, 그 때부터 음악 관련 사업을 쭉 하고 있는 거예요.

Q 세운상가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다른데, 그 때 분위기가 어땠어요?
A 많이 달라졌죠. 그 당시에는 여기 분위기가 그야말로 전자 분야의 메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죠. 세운상가는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었으니까. 오디오에 관한 거, 부품에 관한 거. 근데 이제 이게 다 분산이 되다 보니까 힘들지. 용산으로도 가고, 저기 뭐 테크노마트로도 가고, 그렇게 분산이 되다보니까 서로가 다 어려워져버렸지. 이게 다 모여 있어야 그래도 좀 나은데 말이죠.

Q 가게 오픈은 보통 몇 시에 하세요?
A 8시 반에 출근하고, 7시에 퇴근해요. 아침에 나오면 여기 복도도 청소하고.

Q 제일 뿌듯했던 순간이 있나요?
A 뭐 제일 뿌듯한 거는. 글쎄, 내가 손님들한테 이렇게 맞춰줬는데, 가격대비 정말 잘 맞춰줘서 너무 고맙다. 이 소리 듣는 게 제일 기분 좋지. 그러니까 이게 손님마다 취향이 다 다르니까. 예를 들어서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가요, 팝송 등등 취향이 다 다르니까. 거기에 맞춰가지고 선택을 해드렸는데, 가져가셔서 들어보시고선 선택 잘 해줘서 고맙다고 이런 전화 받을 때가 제일 기분 좋지 뭐.

Q 힘드셨던 순간이 있나요?
A 지금은 여기 양쪽 주변들 보면 모든 게 같이 어울러져서 잘 되어야 하는데, 문 닫는 점포들이 많아서 갈수록 힘들어지는 거죠. 주변에 저기 부속품 하는 분들이 잘되고 그래야 같이 어울려서 잘되는데 지금 문 닫은 데가 많잖아. 옛날에는 여기 점포 하나 얻으려면 엄청 비쌌거든요. 근데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서서히 무너졌지. 특히나 세상이 디지털화 되어버리면서는 더 빨리, 급속도로 이렇게 되었죠.

Q 올해 세운상가가 리모델링을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소감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A  그거는 앞으로 이제 흐름 자체가 어떻게 변화할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죠. 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더 오긴 오겠지만 저희하고 관련이 있을지는 그 때 가서 봐야 알겠죠. 지금 현재로써는 잘될 거라고 생각 안하고 그 때 가서 봐야겠죠. 주변이 먼저 잘 정리가 돼야겠죠.

Q 손님들이 주로 어떤 경로로 찾아오나요?
A 옛날에는 거의 단골손님이 위주로 많았는데, 요즘은 단골손님들이 많이 희석이 되어버렸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만 해도 취미라고 하면은 오디오를 갖는 취미라든가. 이런 게 있었는데, 요즘은 바뀌어가지고 글쎄. 젊은 사람들 선호도 1위는 자동차가 되지 않았나. 아무래도 그러다 보니까 더 밀리고, 또 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팔아먹을게 없어. 옛날에는 새로운 게 나와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팔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뚜렷하게 많이 팔수 있는 게 없어요. 옛날에는 비디오도 팔고 텔레비나 오디오 이것저것 많았는데, 요즘은 팔게 별로 없어.

Q 옛날 라디오 같은 경우에는 빈티지 마니아층이 많지 않나요?
A 맞아요. 근데 그것도 틈새시장이지, 작은 틈새시장이야. 그나마 남아 있는 그런 것들 가지고 틈새시장으로 살아남아 있는 거지.

Q 손님 중에 젊은 사람들도 많아요?
A 젊은 사람들이 많아야하는데, 많이 줄었어. 또한 뭐냐 하면, 바쁘게 움직여서 그러나. 솔직히 요즘 세상에는 스마트폰 하나면 다되잖아. 이거 하나로 다 해결이 되다보니까. 없어지는 업종들이 많아요. 가령, 필름 같은 것도 그래. 옛날 같으면, 장소 좋은데 보면 코닥 필름, 후지필름 이런 거 많았잖아. 필름 카메라가 특이한 카메라가 되어버렸어요. 오디오, 라디오도 이렇게 없어지는 업종들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그마한 틈새시장을 가지고 있긴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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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tographer : 김현경
Q 다른 오디오 가게들과는 다르게 음악을 틀어놓으셨는데, 특별히 이유가 있나요?
A 허허. 이유라고 할 게 있나. 원래 내가 음악을 좋아해. 그래서 지금은 그게 직업이 되었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음악 틀기시작해서 저녁 끝날 때까지 음악 들어요. 음악 선곡은 그 때 기분에 맞춰서.

Q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으세요?
A 글쎄, 뭐 젊었을 때는 클래식을 좋아하다가 이걸 운영하게 되었으니까. 클래식? 그렇지만 음악이라면 가리지 않고 재즈, 가요 다 좋아해.

Q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A 힘닿는 데 까지 해야죠. 평생 이거 밖에 안했어. 나는 다른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어. 이 직업 했다가 다른 직업하고 이런 적이 없어. 이거 하기 전에는 뭐를 했냐면 LP판 가게 했어요. 저기 밖에 간판 보이죠? ‘리빙사’ 라는 저 간판이 옛날에 충무로에 ‘리빙사’ 라는 레코드 가게가 있었어. 그 때 거기서 내가 직원으로 있었지. 허허. 그러다가 군대 제대하고 나서는 오디오로 바꿨죠.

우와 정말 음악과는 깊은 인연이 있는 거 같아요. 너무 좋다. 지금 노래도 너무 좋아요.

Q 오디오 사장님들 중에 사장님처럼 음악에 감동이 있어서 하시는 분은 몇 없을 거 같아요.
A 거의 없죠. 하하. 여태껏 직업 가지고 후회해본적은 없어요. 직업은 너무 좋은데 단지 돈하고는 관계가 좀 멀어. 허허허. 살다 보면 때 되면 들어가야 하는 돈 따박따박 들어가야 하고 부담이 많은데. 그래도 좋아하는 일 하는 거니깐. 다 그렇지 인생이.

Q 사장님께 세운상가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A 좌우당간, 제가 여기 몸담고 일을 해보니까 여기는 전자에 대한 모든 게 다 해결이 가능한 곳이죠. 부속이 되었든, 거기 관련된 제품들이 다 여기서 장만이 되는 곳이니까. 근데 점차 자꾸 줄어드니까 많이 아쉬움이 남죠. 집에만 있는 것보다 나와서 일하는 게 더 좋아요. 나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크게 욕심내고 이런 건 없지만 조금만 더 됐으면 하는 거죠. 이게 큰 힘이 안 들어가니까 나이가 더 들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평생직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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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라는 곳은 아저씨의 ‘평생직장’ 이라는 답변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저씨께 음악 추천을 부탁드렸다. 아저씨는 음악이라면 다 좋다고 하시면서 한참을 CD 진열대에서 서성이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창을 틀어주셨다.

*창[唱] : 판소리나 잡가(雜歌) 따위를 가락에 맞추어 높은 소리로 부름. 또는 그런 노랫소리

“이 노래가 뭐냐 하면 저 양반이 6.25 때 눈을 잃었어. 그래서 목으로 한을 푸는 거야. 이희완 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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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tographer : 김현경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트실 줄 알았던 우리는 조금 놀랐지만, 왠지 모르게 그 한이 서린 소리가 세운상가에 울려 퍼지는 풍경이 묘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마치 상의라도 한 것 마냥 조용히 음악을 감상했고, 음악이 끝나고 난 뒤에도 한참동안 가만히 앉아있다 가게를 나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저씨의 또 오라는 말씀 뒤에 씁쓸한 웃음이 기억난다. 세운상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생활하고 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과 일거리가 예전처럼 많지 않아도 그 곳 자체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 모두 세운상가를 생각하는 가치는 각각 다르지만, 자신만의 의미를 간직하며 그 곳에 어김없이 출근하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진행형인 각자의 이야기들이 매일 매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한다.

다음 주는 청계 상가 편 입니당~기대해주세요! 힌트. 커피.

SERIES INTRO

그 곳 그 사람들 이야기 도시는 경제 발전과 함께 계속된 확장을 거듭한다. 동시에 내부에선 기존 도시 인프라와 건축물들이 거대해지는 도시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철거와 수선을 반복한다. 급속도로 성장한 서울은 그만큼 도시 곳곳에서 빠르게 철거와 수선이 반복되어 왔고, 반복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많은 기억과 공간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오래된 공간들은 막연히 철거하고 멋진 건물을 새롭게 짓는 것이 도시를 멋지게 꾸미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건축을 공부하는 건축학도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사라져 가는 공간을 기억함은 물론이고, 그 곳에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낡고 오래된 것들이 새롭게 반짝거리는 것들보다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계속 변화하는 도시 속,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 곳이 오래된 다방이 될 수도 있고, 누구네 작은 가게가 될 수 도 있고, 길 모퉁이에 있는 가판대가 될 수도 있다. 크고 화려한 장소는 아니지만 사람들 기억이 켜켜이 쌓이는 그것 자체로 그 곳은 충분히 가치 있다. 그 곳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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